“저희 집은 지어진 지 100년이 훌쩍 넘은,
오랜 시간 학교로 사용되던 건물이에요.”
6년간의 연애를 끝으로 작년 9월 결혼해서 곧 1주년을 앞두고 있는 한국❤️스웨덴 신혼부부입니다. 저는 일본에서 무대디자인을 전공하고 지금은 스웨덴에서 “엘리(Aellie)”라는 이름으로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고 있어요. 신랑은 한국에서 Floorball이라는 북유럽 스포츠의 국가대표팀 코치로 근무하다 은퇴를 하고 지금은 고국인 스웨덴에서 공직자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원래 전공은 망치와 톱을 들고 다니며 오페라나 뮤지컬의 무대를 만드는 일이었는데, 지금은 그 무대를 망치와 톱이 아닌 색연필을 사용해 그림으로 그려내고 있어요. 그 외에도 책의 표지나 삽화, 포스터, 패키지 디자인 등 제 그림을 필요로 하는 사람, 회사와 일을 해요.
스웨덴 남부 작은 시골마을에 살아요.
신랑의 가족들이 모두 같은 마을에 모여 살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지금의 동네로 이사 오게 되었어요. 지어진 지 100년을 훌쩍 넘은, 오랜 시간 학교로 사용되던 건물인데 10년 전쯤 주거용 아파트로 개조되었다고 해요. 3층짜리 아파트의 2층에 살게 되었는데, 이 집을 처음 보러 왔을 때 그냥 “여기다!” 싶었어요.
저는 방금 공장에서 나온 듯한 반짝반짝 광나는 새것보다는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오래된 것들에 더 마음이 가요. 누구를 거쳐 왔을지,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을지 내 마음대로 상상하는 시간이 참 좋더라고요. 그런데 마침, 100년이 넘은 집이라고 하니 추억이 가득 찬 커다란 보물상자 같은 공간에 살면 얼마나 신날까라는 생각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계약서에 사인을 했어요.
4m가 넘는 높은 천장과 집 한쪽 전체를 채우고 있는 커다란 창문에서 들어오는 햇빛에 반해버렸어요. 해가 귀한 북유럽에 사는 분들이라면 집을 구할 때 가장 먼저 보는 부분이 일조량 일 거에요. 저도 그 중 한 명이었고요.
창문 많지만 왜 커튼은 없을까?
가장 먼저 보이는 공간은 거실이에요. 창문이 많은데 왜 커튼은 없냐고 지인들이 자주 물어봐요. 스웨덴은 반년이 넘는 겨울 동안 해가 뜨지 않기 때문에 늘 해가 아쉬운 곳이에요. 단 1초도 놓치고 싶지 않은 햇빛을 굳이 커튼을 쳐서 피할 이유가 없어요ㅠㅠ
스웨덴에는 “Fika”라는 티타임 문화가 있어요. 일반 사람들은 물론이고, 신랑 회사에서는 Fika도 일의 한 부분으로 여겨 하루에 총 4번 의무적으로 Fika 타임을 가진다고 해요.
사진 속 주전자는 일본에 사는 친한 동생이 결혼 선물로 보내준 제품이에요. 저는 재택근무 자라 혼자 피카를 할 때가 많은데요, 그런 저의 생활 패턴을 잘 아는 배려가 담긴 선물이죠. 근래 가장 자주 사용하고 애정 하는 주방용품이에요.
밤 하늘이 통째로 담기는 창문을 가진 침실
겨울이 되면 높은 창문을 통해 밤하늘에 빼곡히 박힌 별들이 선명하게 보여요. 한국에 살 때 겨울이 되면 습관처럼 오리온 별자리를 찾아보곤 했는데, 침실 창가에서 그 오리온 별자리가 선명하게 보여서 너무 반가웠어요.
비록 지구 반대편에 살지만, 같은 하늘 아래구나 하는 생각에 알게 모르게 위로받는 것 같아요. 이사 초반에는 한참 동안 별을 보다가 잠드는 날이 많았어요.
침대 맞은편에 있는 화장대는 60년도에 만들어졌어요. 동글동글한 곡선이 마음에 들어 구입하게 되었는데 손잡이 부분이 많이 낡아서 조만간 교체하려고 해요.
조개와 소라껍데기가 가득 장식된 작은 보석함은 어머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저의 보물이에요:D
남편의 영역 | 주방
스웨덴에서는 어깨에 타월을 두르고 능숙하게 요리하는 남자들의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어요. 비싼 물가에 집에서 음식을 해먹는 생활을 해온 이곳 남자들은 대부분 저보다 요리를 잘해요.
제 신랑도 어릴 때부터 요리를 해왔고, 마침 제가 요리에는 전혀 소질이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저희 집 요리 담당은 남편이 되었어요. 그래서 주방은 신랑의 영역이에요. 사진 속에 보이는 잡화나 소품 등 대부분 남편이 고른 것들이에요.
웬만한 스웨덴 가정집에는 꼭 하나씩 벽에 걸려있는 가구에요. 심플한 디자인이지만 선반에 뭘 올려놓느냐에 따라 전체 공간 분위기가 변하는 걸 보는 재미가 있어요.
냉장고에는 크리스마스 때 직접 만들어서 지인들에게 한가득 보내고 남은 크리스마스카드와 시부모님 사진, 직접 만든 청첩장, 판매하려고 만들었다가 결국 소장하게 된 마그넷 등 소소하지만 우리에게 가치 있는 것들로 가득 차 있어요.
저희 집은 가구와 소품뿐만 아니라 그릇도 대부분 빈티지에요. 아마 저희 집에서 제일 영한 존재는 저와 신랑일 거예요.
아내의 영역 | 작업실
이번에 소개할 공간은 제가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에요.
작업실 앞에는 제가 좋아하는 그림을 걸어 두었어요. 오다가다 보면서 피식하고 웃게 되는 그림이에요. ‘나도 이렇게 보는 사람을 웃게 하는 그림을 그려야지!’라는 의욕을 끌어올려 주는 그림이라 애착이 많이 가요.
매일 아침 8시면 작업실로 출근해요. 오후 4시가 되면 신랑이 퇴근해서 오는데,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계속 일하다가 6시가 되면 저녁을 먹기 위해 주방으로 퇴근을 해요. 스스로 정해둔 퇴근시간은 6시이지만 거의 매일 9시까지 작업실에 머물러요. 일이 많을 때는 새벽 3시까지 야근을 하는 경우도 허다해요.
저는 정리정돈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는데, 남편은 정반대로 정리정돈이 생활화된 사람이에요. 가정의 평화를 위해 함께 사용하는 공용 공간은 늘 깨끗하게 해 두지만 저만 사용하는 공간에서는 어김없이 어지르는 습관이 다시 살아나요.
주방이 신랑의 영역이라면 작업실은 오롯이 저만의 영역이기 때문에, 아무리 방금 핵폭탄이 떨어진 것 같은 모습이더라도 신랑은 아무런 관여를 할 수 없는 공간이에요:)
자연을 듬뿍 담은 발코니
올여름 너무 더워서 발코니에 앉아있을 엄두도 내지 못했어요. 내년 여름에는 바닥에 나무 데크를 깔고 파라솔을 설치해서 그림도 그리고, 지인들을 불러 고기도 구워 먹고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종종 건너편 언덕의 나무숲 사이로 동네로 내려오는 기차가 보이는데, 저녁에 그 풍경을 보면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에 나오는 고양이 버스 같아요.
집을 꾸미는 일은 나를 꾸미는 일
집이 정리가 안되고 무엇인가 마음에 안 들고 어수선하다 싶으면 제 마음도 꼭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가능한 늘 깨끗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것들로만 채워 두려고 애쓰고 있어요. 딱히 앞으로 집을 어떻게 꾸며야지 하고 정해둔 것은 없어요. 그냥 지금처럼 자연스럽게 나와 신랑이 좋아하는 것들이 고스란히 담기고, 지금처럼 편안한 공간이면 더 바랄 게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