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도 생명체와 같아서
아끼며 소중하게 대해줘야 한다.”
안녕하세요:) 저는 책을 쓰는 작가입니다. 사려 깊은 남편, 유기견 출신이지만 구김살 없이 밝고 착한 강아지 ‘호동이’와 함께 살고 있어요. 첫 신혼집에 살면서 공간이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남편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그리고 지난여름, 두 번째 집으로 이사하면서 인테리어 공사를 앞두고 아버지가 해주신 말씀이에요. 지금 이 집에 살면서 그 말씀을 자주 떠올리곤 합니다.
가족이 함께 만든 집 |
건축 일을 해오신 아버지와
빈티지 리빙 숍을 운영하는 동생과 함께
저희 집은 오랫동안 건축 일을 해오신 아버지가 리모델링 공사를 총괄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좋은 자재로 꼼꼼하게 시공할 수 있었어요. 모든 인테리어 현장이 그렇듯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아버지와 함께 공사를 진행하고, 동생과 함께 스타일링을 하면서 함께 만든 집이라 제게는 너무나도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서울이지만 서울 같지 않은 곳'
오래된 것들이 많이 남아 있고, 자연을 가깝게 느낄 수 있는 곳에 살고 싶었습니다. 지금의 동네가 그러면서도 서울의 중심지와 가까워요.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있던 동네라서 새 집을 구할 때 다른 지역은 아예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단 한 번도 리모델링 하지 않은 집
저희가 살고 있는 집은 1990년대 후반에 준공되어 한 번도 리모델링을 하지 않은 빌라였어요. 기본적으로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선호할만한 집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저는 이 집을 처음 보는 순간부터 마음에 들었습니다.
나무를 베이스로 한 공간
전체적인 인테리어 컨셉은 나무 소재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었습니다. 포인트가 아닌 베이스로 말이죠. 첫 신혼집은 화이트 컬러의 모던한 집이었는데, 온통 하얗고 깔끔한 곳에 살다 보니 자연 소재가 주는 따뜻함과 자연스러움이 그립더라고요. 입구에서부터 집의 전체적인 컨셉이 느껴지도록 했습니다.
작은 현관이라 답답해 보이지 않도록 반장으로 맞춤 제작하였어요. 중문, 방문과 같은 재질로 현장에서 제작했어요. 옷과 신발이 많지 않은 저희 부부에게는 이 정도의 수납공간으로도 충분하답니다.
중문 없이 바로 거실과 연결되어 있는 현관은 가벽을 세워 중문을 설치했습니다. 작은 집은 중문을 설치하면 답답해 보인다고 하는데, 저는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많은 것 같아서 중문을 설치하게 되었습니다.
현장에서 합판으로 제작한 문과 가구는 사진으로는 정확한 색감을 담아내기 힘든데 실제로 보면 붉은빛이 살짝 도는 짙은 브라운 컬러입니다. 일부러 무늬 결이 많은 합판을 선별해 색이 다양하게 표현되도록 했어요.
풍경을 집 안으로 끌어들인 거실
일반적으로 거실에 소파와 TV를 두지만 저희는 거실이 작업실의 기능을 겸하도록 구성했습니다. TV를 즐겨 보지 않는 부부의 생활 방식도 반영했지만, 무엇보다 재택근무를 해야 하는 제 상황을 남편이 배려해준 덕분입니다.
책장은 가구를 구입하는 대신 목공으로 현장에서 제작했습니다. 아주 견고하게 만들어진데다 벽 안에 매립된 형태가 깔끔해 보이기도 해요.
개인적으로 발코니가 있는 집을 선호하지만 거실을 넓게 사용하고 싶기도 하고, 저층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 확장 공사를 했습니다. 덕분에 책상 앞에 앉아 창밖의 풍경을 볼 수 있어요.
실내에서 화단으로 바로 나갈 수 있는 구조에요. 겨울이 되면서 지금은 나무들이 앙상하지만 소복이 눈이 쌓였을 때는 겨울의 정취를 가득 느낄 수 있습니다. 창밖이 온통 초록색이던 여름날과 다채로운 색깔의 단풍이 가득했던 가을날에는 한참 동안 창밖을 봐도 지루한 줄 몰랐답니다.
풍경과 마주앉은 자리
현관 쪽 벽을 등지고 마련되어 있는 제 공간이에요. 책상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구 중 하나입니다. 디자인과 기능, 두 가지 모두를 충족하는 책상을 찾기 위해 몇 개월 동안 발품을 많이 팔았습니다.
마음에 드는 빈티지 데스크를 만나기 위해 여러 숍을 둘러보았는데, 작업시간이 길고 목 디스크가 심한 저로서는 불편한 점이 있을 것 같아서 호두나무 소재로 주문 제작했습니다.
앞뒤로 양옆에 서랍이 있고, 뒤쪽을 책장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이 디자인은 대표적 빈티지 데스크의 형태를 하고 있어요. 하지만 높이와 폭 등을 제 신체와 자세, 그리고 사용하는 의자에 맞추어 제작했기 때문에 장시간 작업을 하더라도 무척 편안합니다.
유행은 생각보다 빨리 변해요.
어느 시기에 가장 ‘핫’하게 여겨졌던 것이 얼마 지나지 않아 가장 지루한 것이 되기도 하더라고요. 저 역시 트렌드나 브랜드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지는 못하지만, 가구를 비롯하여 무언가 구매를 할 때 기본적인 것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질이 좋은 것을 고르려고 노력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가치 있게 느껴지는 빈티지 제품과 감각 있는 국내 디자이너들이 만든 원목 핸드메이드 제품을 좋아합니다. 그중에서도 깊이가 느껴지는 월넛과 티크 수종을 제일 좋아하고요.
거실 사이드보드 위에 올려놓은 테이블 램프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소품 중 하나에요. ‘르 클린트 No306’은 현재에도 생산되는 제품이지만 제가 소장하고 있는 것은 1940년대에 생산된 빈티지 제품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요소들이 골고루 들어가 있어 무척 마음에 들어요. 집안 곳곳의 빈티지 조명과 소품은 동생과 함께 셀렉했어요.
유난히 작은 주방
평수에 비해서 유난히 작은 주방 때문에 배치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결국 기존의 배치를 크게 벗어나지 않은 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싱크대와 다이닝 공간이 뒤섞여 있는 구조를 좋아하지 않는데, ㄴ자로 파티션을 설치하여 주방과 다이닝 공간을 분리해주었어요.
빌트인 냉장고를 설치해 냉장고가 싱크대보다 더 튀어나오지 않게 했고, 냉장고 옆면의 ㄴ자 파티션 안쪽에는 아일랜드와 선반장을 설치했습니다.
싱크대는 화이트 우레탄 도장으로 마감하고, 싱크대 앞 벽면도 타일을 시공하는 대신 목공 작업 후 방수 페인트로 마무리했습니다.
흔치 않은 카키 컬러와
빈티지 조명으로 완성된 다이닝 공간
같은 도장 벽이지만 거실과 다이닝 공간의 컬러를 다르게 한 이유는 두 공간의 경계를 구분 짓기 위해서예요. 각 공간마다 변화를 주고 싶었거든요. 카키색은 화이트나 그레이와 달리 흔하게 사용하는 컬러가 아닌 데다 다소 어두운 계열이라 조금 걱정스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스타일링까지 마치고 보니 월넛 테이블, 빈티지 조명, 제작한 방 문과도 조화롭게 어울려서 만족하고 있어요.
사진 속 두 개의 조명이 다이닝 공간을 더욱 매력적으로 비춰지게 해주는 것 같아요.
다음으로 보여드릴 공간은 침실입니다. 침실은 컬러가 아닌 패턴이 바탕이 된 공간이에요. 보통 패턴 벽지는 포인트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회화적인 느낌의 벽지가 방 전체를 감싸도록 했습니다.
한 폭의 그림 속에
들어와있는 것 같은 침실
풀이나 꽃처럼 자연을 소재로 한 벽지라면 나무로 만든 방 문, 창문과 잘 어울릴 것 같았어요. 제가 시공한 벽지는 Sandberg라는 스웨덴 제품인데 다크 그린 컬러를 바탕으로 핑크색 야생화가 그려진 벽지입니다.
헤드가 없는 퀸 사이즈 침대를 가운데 놓고, 양옆에는 세트로 구성된 나이트 스탠드를 두었습니다. 사진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나이트 스탠드는 티크 우드로 제작된 1950년대 빈티지 가구입니다.
역시 같은 시기에 제작된 빈티지 천장 등과 벽 등을 설치했고,
현대미술작가인 ‘Tony Torrihon’의 1980년도 판화 작품과 1910년 경에 제작된 빈티지 포스터로 머리맡을 장식했습니다.
수수하지만 편안한 게스트룸
침실을 제외한 나머지 두 개의 방은 하나는 게스트룸, 하나는 붙박이장만 설치해서 드레스룸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드레스룸에는 정말 붙박이장 말 곤 아무것도 없어서 생략하고, 저희가 농담 삼아 ‘남편의 자취방’이라 부르는 게스트룸을 보여드릴게요.
이사 온 지 반년이 지날 때까지 빈방이었다가 얼마 전에 가구를 들였습니다. 처음에 생각한 용도는 손님이 오셨을 때를 위한 게스트룸이었는데, 평소엔 남편이 일을 하거나 휴식을 취하면서 다용도로 쓰고 있어요. 그래서 남편의 자취방이라고 불러요(웃음)
워낙 작은방이라 퀸 사이즈의 침대를 놓는 것이 무리여서 더블사이즈 매트리스를 두고, 원목으로 제작된 1인용 책상을 놓고 화이트 린넨 베딩과 베이지 컬러의 커튼으로 간단히 완성된 공간입니다. 수수하고 소박해서 마음이 편해지는 아늑한 공간이라 저희 부부 모두 이 방을 무척 좋아합니다.
세월이 담긴 공간을
취향에 맞게 고쳐 산다는 것
오래된 빌라 단지에서 느낄 수 있는 편안하고 조용한 분위기가 좋아요. 토박이로 오래 거주하신 이웃분들이 새 이웃인 저희를 따뜻하게 맞아 주신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앞으로 또 어떤 집을 만나게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동네에 오래오래 살고 싶고, 먼 미래에는 오래된 이층 주택을 꿈꾸고 있어요.
지금도 남편과 동네 산책을 다니면서 “저긴 어때?” “저 집도 참 멋지다.”하며 이야기를 나누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