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광고 회사에서 일하다, 지금은 직종을 바꿔서 그래픽 관련 일을 하는 30대 직장인이에요. 또 취미로 셀프 인테리어와 실내 가드닝을 기록하는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을 운영하고 있어요.
재택근무로 집에서 일하는 패턴이 반복되다 보니 출근과 퇴근의 구분이 없어져 버렸어요. 일을 하지 않을 때는 식물들을 돌보거나, 드라마나 영화를 봐요. 최근에는 브이로그를 찍으려고 이것저것 시도해 보고 있어요.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나다 보니 집에 대한 관심도 많아졌어요. 또 대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쭈욱 자취를 해온 터라 공간에 대한 의미도 컸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내 공간을 가꾸는 일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집은 지어진 지 28년 된 16평의 아담한 아파트예요. 거실로 사용 중인 큰 방에 작은방 한 개가 딸린 일반적인 구조입니다. 맨 처음 집을 구하러 다닐 때 어떤 집이 제 라이프스타일에 맞을까 고민했어요. 식물을 좋아하고 하늘을 즐겨 구경하는 저에겐 큼직한 베란다 창이 필수였고, 해가 잘 드는 꼭대기 층이 항상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번 집도 맨 끝 층이에요.
또한 혼자 생활하는 혼삶러의 특성상 원룸을 선호했어요. 거실이 다이닝 룸이자 오피스이기도 하니까요. 거실에서 주로 모든 걸 하고 지내니까 공간 구분이 있는 것보단 널찍한 거실이 더 좋아요. 그래서 방이 딱 하나 있는 걸 제외하면 원룸에 가까운 이번 집의 구조가 마음에 들었어요.
처음 이사 왔을 때는 특별히 염두에 둔 컨셉이 없었어요. 다만 이파리 식물을 많이 키우고 있어서 실내 식물 인테리어에 어울리는 컨셉을 정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시간이 날 때마다 식물을 많이 키우는 해외 식물 집사들의 인테리어 자료를 찾아보곤 했습니다.
조금씩 취향에 맞는 키워드를 따라가다 보니, 제일 마음에 드는 컨셉은 ‘재팬디 스타일(japandi style)'이더라고요. 노르딕 스타일과 재팬의 합성어인데, 북유럽의 미니멀하면서 모던한 분위기에 약간 동양적이면서도 따듯한 톤을 더하는 스타일을 뜻해요. 집에서 따듯한 느낌을 받고 싶은 제 취향에 잘 어울리는 키워드였어요.
컨셉을 정하고 나니 이제야 조금씩 집이 정리되어 가는 기분이 듭니다. 현재 집에서 지낸 지 1년이 조금 더 넘어가는데, 느린 편이죠. 살다 보면 처음에 생각한 동선이나 가구 배치가 불편해지는 경우도 있고요. 저는 제 공간에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리는 편인가 봐요. 여러 번의 변화를 거쳐 지금에 이른 저희 집의 변천사를 소개할게요. 재미있게 구경해 주세요.
거실부터 소개해 드릴게요. 거실 중 가장 큰 특징은 셀프 페인팅으로 바꾼 베이지색 벽이에요. 원래는 어두운 회색 벽지였는데, 가뜩이나 동향이라 햇빛이 부족한데 내부 분위기를 침침하고 우울하게 만드는 색이었어요.
새로 벽지를 할까 고민하다가, 벽체 상태가 원체 고르지 않아서 도배 만족도가 떨어질 걸 예상했습니다. 그래서 처음 이사 올 때부터 페인팅을 하겠다고 마음먹었지요. 막상 페인트를 하려니 고민이 되더라고요. 흰색이냐 아니면 과감하게 다른 색을 도전하냐를 두고 머릿속으로 계속 저울질했어요.
물론 화이트는 언제나 옳죠. 이전 집에서도 계속 화이트 인테리어를 고수했어요. 그렇지만 지금 아니면 언제 다른 컬러를 시도할까 싶더라고요. 만약 깔끔하게 리모델링해서 인테리어 시공을 전부 했다면, 저는 화이트로 결정했을 거예요.
반면 직접 페인트를 고르는 경우에는 훨씬 다양한 컬러 선택이 가능합니다. '이왕 못난 벽을 가진 김에, 새로운 시도는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면서 낡고 울퉁불퉁한 벽면이 오히려 기회처럼 느껴졌어요.
고민 끝에 매장에 가서 전문가의 조언을 얻었고, 결국 화사한 아몬드 베이지의 색으로 결정했습니다. 어두운색을 칠하면 실내가 좁아 보일 것을 우려해서 밝은 톤으로 골랐는데, 이왕 컬러를 도포하는 김에 조금 더 진한 색이었어도 좋았을 것 같네요. 실내에 컬러를 더하고 난 뒤 지금은 만족스러워요. 메인 컬러인 베이지 톤이 아늑한 기분을 줍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페인트의 단점이 드러났습니다. 그동안 몇 번 페인트를 칠해봐서 예상은 했습니다. 바로 표면의 상 태를 고스란히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표면에 진한 색을 칠할수록 요철이 더 잘 드러나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울퉁불퉁한 벽면을 고르게 만들려면 꽤 큰 시공이 필요한데, 지금 당장은 인테리어를 할 여력이 없어서 차선책을 고민해 보게 됐습니다.
그 결과 템바 보드가 눈에 띄었어요. 적은 노력으로 벽의 표면을 가려주면서, 공간에 디테일을 더할 수 있는 방법이었죠. 비용이 아주 저렴한 건 아닌데 효과가 좋을지 몇 달간 고민했어요.
다행히도 템바 보드를 붙이고 나니 식물들과 어울리는 분위기가 되었어요. 사진 찍을 때 더 감성적인 공간을 만들어 줍니다. 큰 공사를 하지 않고서도, 충분히 아늑한 공간으로 꾸미는 방법을 찾아서 만족스러워요.
거실 벽에 페인팅한 밀크티 컬러가 메인이라고 한다면 포인트는 그린이에요. 베이지와 그린 컬러의 조합이 매력적으로 느껴졌지만 고가의 가구를 들이기엔 조금 망설여졌어요. 그러던 중 저렴한 그린 테이블을 발견하고 온라인으로 주문했습니다. 받아보니 실물은 블루가 섞인 틸그린에 가까운 컬러였네요. 쨍한 그린이 아닌 덕분에 차분한 그린 컬러로 포인트를 주게 되었습니다.
의자는 같은 색으로 통일하고 싶어서 시간을 두고 천천히 골랐어요. 초록색 테이블과 의자가 저만의 좀 마이너한 취향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많은 분들이 판매처를 궁금해하시더라고요. 포털 사이트 메인에 올랐을 때 예상하지 못한 많은 문의를 받아서 흥미로웠어요. 그린 컬러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아서 반갑기도 했습니다.
테이블 말고 그린 컬러 가구가 하나 더 있어요. 완전히 내 공간을 갖게 되면 꼭 들이고 싶었던 1인용 긴 소파입니다. 커버를 바꿀 수 있는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지금의 컬러가 질리게 되면 커버를 구매해서 교체할 수 있습니다.
비교적 큰 가구인 테이블과 소파가 그린인데다가 많은 식물들도 제 공간에 그린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그 외의 소품들은 메인 컬러인 베이지를 지나치게 해치지 않는 화이트와 우드, 내추럴 톤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많은 식물을 키우다 보니 이파리들을 어떻게 배치할까 생각하게 돼요. 자료를 찾던 중 선반을 이용한 식물 인테리어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벽 선반을 달려면 벽에 타공을 해야 하니 전셋집에서는 어려운 방법이었어요.
그러던 중 드디어 제 집이 생겼으니 선반을 마음껏 달자고 결심했습니다. 이사 오고 짐을 정리하자마자 제일 먼저 플 로팅 쉘프부터 달았어요. 1m의 원목 선반 두 개를 사서 이어지게 설치했는데, 생각과는 다르게 분리된 선반을 완전히 이어지게 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더라고요. 주문 제작을 했어야 하나 봐요. 그래도 튼튼해졌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무거운 화분을 올려도 끄떡없어요.
높게 달아놓은 선반에서 식물들이 멋지게 자라주면 보람을 느껴요. 스킨답서스나 호야, 그리고 일부 필로덴드론 종류는 풍성해질수록 덩굴을 늘어뜨리는 형태로 자라는데요, 빛이 약간 부족한 실내에서도 잘 자라는 착한 식물들이라서 너무 좋아요. 물을 깜박하고 자주 주지 않아도 강하게 살아남는답니다. 식물 초보자나 저 같은 게으름뱅이에게 딱인 종류들이에요.
기르는 방법이 다른 만큼 식물들도 저마다 개성이 있어요. 수형이나 색깔에 따라서 어울리는 화분이 다르기도 하고, 실루엣에 따라서 또 어울리는 장소가 있는듯해요. 멋진 화분과 자리의 조합을 찾는 일도 식물 집사의 사소한 기쁨입니다.
입식 선반으로는 어떤 가구를 쓸지 궁리했는데, 이케아만 한 게 없었어요. 가구를 자주 옮길 때도 가벼워서 좋아요. 메탈 소재라서 식물에 분무를 해 줄 때도 가구가 상할 염려하지 않아도 되고요. 칸의 높이가 다른 선반들에 비해 높다는 점도 식물 키우기에 딱입니다.
흰색으로 페인팅해서 2년간 잘 쓰다가, 하나 더 구입해서 조립했습니다. 두 번째는 약간의 커스텀을 해서 저만의 식물 온실을 만들었어요. 외국에서는 이케아 개조(ikeahack)가 인기인 것 같아요. 이 선반은 가격도 저렴해서 취향에 맞게 부담 없이 개조하기도 좋은 듯해요.
메탈 선반이 우리 집 포인트라고는 해도, 우드 가구가 주는 따스한 감성은 포기할 수 없죠. 그래서 집 곳곳에는 원목 소가구들이 있어요. 원목 소재는 식물하고도 너무 잘 어울려요. 떼어놓을 수 없는 조합 같아요.
또 인기 많은 스테인리스 재질의 모듈 가구를 한번 들여보기도 했는데, 이미 원목과 식물로 가득한 공간에는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결국 중고거래를 통해 떠나보내버렸네요. 요즘 유행하는 소재라고 무작정 들이면 동떨어져 보이더라고요.
집에 있는 그림들은 대부분 직접 그려서 액자로 걸어둔 것입니다. 미술 전공을 살린 셈이죠. 해외의 디지털 아트 포스터 판매처에서 작품을 판매하기도 했는데, 바빠서 신경을 잘 못 쓰네요. 시도해 보고 싶은 건 많은 데 마음만 굴뚝같습니다. 직접 액자를 제작하면서 좋은 점은, 질리면 언제든지 새로 그려서 바꿀 수 있다는 점이에요.
이파리 그리는 것도 좋아하는데, 항상 그림보다는 실제 식물이 가장 멋진 예술처럼 느껴집니다. 식물덕후라서 그런 가봐요. 계절에 따라 식물이 변하고 제 공간도 변해가잖아요.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 답답해지기 쉬운데, 싱그러운 생명들이 같이 한 공간에 있다는 걸로도 기분전환이 많이 됩니다. 식물 인테리어를 적극 추천하는 이유예요.
원래 집순이였는데, 코로나 때문에 재택근무가 길어지면서 집은 휴식처인 동시에 일하는 공간이 되었어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오피스이기도 한 만큼, 집이란 제가 영감을 받는 공간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럼 이상으로 저희 집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