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스 옵션에서 스튜디오 같은 신혼집으로

안녕하세요! 저는 '슬로몽드'라는 홈퍼니싱 디자인샵을 운영하는 가구 디자이너 박정훈입니다.

지역, 구조, 공원뷰 모두 탐났던 아파트에 첫 청약을 넣고 기적처럼 당첨되었는데요! 집이 지어지는 3년 동안 어떻게 꾸밀지, 어떤 가구를 만들지 행복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리고 이제 막 입주 3개월 차가 되었습니다.

저희는 마이너스 옵션에서 시작했는데요. 대부분 마이너스 옵션에 대해서 잘 모르시고, 또 얼마만큼 공사가 필요한지 궁금해하세요. 가구는 커녕 변기도 없고 당연히 도배, 타일, 마감도 되어있지 않아요! 저희는 오히려 풀 인테리어를 할 수 있어서 좋았지만요. :)

텅텅 빈 곳이지만 설비나 이상적인 구조를 위해 철거부터 진행해 주었습니다. 특히 저희는 대면형 주방을 만들기 위해 급배수 이전 공사부터 시작했어요.

인덕션 전용선이나 후드 위치, 실링팬 위치까지 하나하나 체크해야 하고, 특히 전체적인 전기+조명 공사와 욕실 도기 설치 등등 현장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순간들이 많았어요.

개인적으로 찍힘에 취약한 마루보다 관리가 편한 타일을 선호해요. 그래서 각 방은 마루로, 거실과 주방은 포쉐린 타일로 시공했죠. 가장 면적을 많이 차지하는 공사라서 타일팀은 일주일이나 수고를 해주셨어요.

샷시 필링 작업 후 마루도 깔아주었고요.

저는 미니멀한 인테리어를 꿈꿨기 때문에 모든 걸레받이와 몰딩은 따로 하지 않았어요.

마지막으로 조명을 설치해 줍니다. 천장은 매입 조명으로 채워지고, 중앙에는 실링팬도 설치했어요. 

그리고 가구는 제가 전문가니까요! 직접 설계, 발주하고 시공팀만 섭외하여 설치했답니다. :) 이제 정리된 저희 집을 보여드릴게요.

따라라란 딴-

거실부터 시작해요

중문을 열고 들어오면 거실부터 만날 수 있어요.

저희 부부는 각자의 방보다 거실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곤 해요. 특히 금요일 밤과 주말이 저희에겐 참 소중해요. 같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밀린 예능도 보고, 술 한 잔도 곁들이고요.

원래 소파 뒤에는 알파룸이 있었는데 거실을 넓게 사용하려고 벽을 철거했습니다. 덕분에 뒤쪽에 작은 다이닝이 생겼어요.

소파는 배치를 쉽게 바꿀 수 있게 디자인됐어요. 저희 부부가 함께 널브러져도 넉넉한 사이즌데요. 대신 높이가 안정감 있게 낮아 거실이 좁아 보이지 않게 구성했어요. 오염이 쉽게 되지 않는 원단으로 제작해서 걱정도 덜었고요.

테이블은 칸딘스키의 작품처럼 기하학 패턴의 추상화가 연상되는 독특한 형태로 제작해보고 싶었어요. 여러 형태로 모델링을 하면서 고민해보다가 구조적으로 안정적인 지금의 모습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이닝 공간과 거실의 경계는 이 소파가 해주고 있어요 :)

스튜디오 같은 다이닝룸

인테리어를 계획하면서 ‘스튜디오 같은 집’을 꿈꿨어요. 배경보다는 그곳에 놓이는 가구와 소품들이 돋보이도록, 그래서 작은 노력으로도 집 분위기가 바뀔 수 있기를 바랐죠. 

그래서 저희 집에는 장식적인 요소가 많이 없는데요, 딱 한 가지. 요 원형 선반은 저희 집의 시그니처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특별히 제작한 거랍니다.

그 앞에는 제가 꼭 쓰고 싶었던 곡목 체어와 잘 어울릴 것 같은 원형 테이블도 직접 만들었죠.

저희 집에 있는 가구는 모두 ‘화이트 오크’로 만들어졌는데요. 개인적으로 고급 수종 중에서도 밝고 결이 아름다운 화이트 오크를 좋아해요. 무늬를 살리려고 나무를 넓은 폭으로 직접 집성하여 솔리드 원목 상판을 만든 거예요.

이전 집에서부터 식탁보단 소파 쪽으로 음식을 가져와 TV와 함께 주말을 보내곤 했어요. 이번에는 TV 대신 빔프로젝터를 설치해서 딱 좋은 위치에서 행복한 주말을 보낼 수 있어요!

가장 많은 노력이 들어간 주방

인테리어 공사하면서 가장 많은 신경을 쏟은 주방입니다. 제가 설계하면서 채운 조건은 이랬어요. 효율적인 동선, 대면형 아일랜드 구조, 빵빵한 수납공간, 독립적인 홈카페 공간, 완벽한 빌트인. 드디어 생긴 제 집이니까 그동안 꿈꾸던 로망들을 모두 실현해보고자 했어요.

넓은 평수에서나 가능한 수입 주방 구조를 꼭 적용해 보고 싶었거든요. 뒤로는 키 큰 장이 쭉 들어서 있어 수납이 좋고, 전면에는 거실을 마주 보는 대면형 아일랜드가 있고요.

급배수 이전 작업과 알파룸 철거 등의 시공. 그리하여 33평형에 과연 가능할까 싶었던 3.2m의 대형 아일랜드가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아일랜드 덕분에 설거지할 때는 이런 풍경을 바라볼 수 있답니다!

여기는 커피머신과 소형 주방 가전들을 둔 홈카페 공간이에요. 저는 주방의 베스트는 바로 이 상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크리미한 아이보리 컬러가 무늬목, 화이트 도어와 잘 어울려서 자꾸 어루만지게 돼요. 세라믹 상판이 내구성, 내열성, 흡수성, 위생성, 유지관리가 훌륭하다는 건 아마 많이들 알고 계실 것 같고요.

구석구석 수납공간을 알차게 짜 넣었어요. 남편이 저의 그릇 쇼핑을 말리지 못하도록! ㅎㅎ

냉장고, 식기세척기 등 대형 가전제품은 전부 빌트인으로 적용했어요. 특히 도어 부착형 가전은 핸들이 없도록 신경 써서 디자인해서 문을 열지 않으면 다들 식기세척기와 김치냉장고가 있는지 모르시더라고요.

주방 안쪽에서 바라보면 거실, 다이닝, 안방까지 시야가 닿아서 이 모습을 참 좋아해요.

호텔같은 침실을 꿈꿨어요

침실은 호텔처럼 꾸며보고 싶었어요. 웅장한 헤드보드와 높이감이 있는 매트리스가 필요했는데 직접 제작한 헤드보드가 집의 전체적인 분위기와도 잘 어우러지면서 호텔의 느낌도 살려줘서 만족스러워요. 특히 좌우의 날개가 90°로 접히거든요. 분위기에 따라 원하는 형태로 변형할 수 있어서 좋아요.

이전 집에서 사용하던 TV는 안방으로 옮겼어요. 삼성의 더프레임 TV인데, 액자처럼 걸려있는 게 참 좋더라고요.

안방의 드레스룸은 다른 세대와 구조가 달라요. 보통 시스템 옷장이 들어가는데, 저는 장을 크게 짜고 싶어서 화장대 위치를 변경했어요.

화장실은 건식으로 구성했어요. 샤워부스 밖으로는 물이 튀지 않게 하고, 흡입력이 좋은 환풍기를 설치해서 바로 건조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고요. 여행지 리조트에서 경험했던 고급스러움을 느끼고자 호텔에서 종종 보이는 탑볼 세면대 디자인을 적용했습니다. 

입체 타일의 화려함을 극대화하기 위해 커다란 욕실장을 과감히 없애고 펜던트 등과 간접조명 거울을 달았어요. 컨셉을 ‘호텔 욕실’로 잡은 김에 지저분한 것들은 모두 안방의 파우더룸에 보관하며 깔끔하게 사용하고 있답니다.

주방 끝에 있는 다용도실. 건조기가 있어 빨래건조대를 따로 설치하지 않았어요. 대신 속옷이나 행주 등을 널기 위해 세탁기는 병렬 설치하고, 그 위로 와이어 빨랫줄을 사용하고 있어요. 

거실 화장실은 미래의 아이와 매매 후를 생각해서 캐주얼한 분위기로 마감했어요. 안방 화장실이 ‘고급스러움’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곳은 ‘수납’을 생각했죠.

집에 있으면 가끔 북받쳐 오르기도 해요

집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여러 가지 사건사고로 중간에 울기도 참 많이 울었어요. 요즘은 집에 있으면 묘한 기분이 들어요. 아마 감사함과 행복인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저의 제작 가구들을 예쁘게 봐주시는 분들을 위해 온라인 디자인 퍼니처샵 ‘슬로몽드’ 라는 브랜드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앞으로도 ‘집’이라는 공간에 녹아드는 개성 있고 감각적인 작품들을 만들어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