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03 11:55

세상 어디에도 없는 집, 원주 나비지붕집
#주택     #50평이상     #모던     #전원속의 내집     #포트폴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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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쓰신 책에 담긴 신선한 디자인 시각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라는 내용으로 시작한 건축주의 메일 한 통. 첨부파일에는 새로운 집에 바라는 내용과 추구하는 삶의 모습이 빼곡히 정리되어 있었다.

젊은 부부는 직장때문에 거처를 원주 혁신도시로 옮기게 되었고, 앞으로 꽤 오랫동안 이 동네 머무를 요량이다. 그래서 공들여 주택을 지을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단면도로 미리보기

단독주택 블록의 끝, 마을과 숲의 경계에 놓인 땅. 찍어낸 듯 늘어선 필지들 가운데 오직 이 땅만 일그러진 윤곽으로 여러 개의 도로에 접해 있다. 이런 곳이라면, 마을 전체를 아우르는 시각으로 집의 앉음새를 고민하게 된다. 여러 대안들을 검토하는 와중에, 건축주는 정사각형 윤곽의 평면을 제안하였다.

 

단순한 조형이 취향에 맞으며, 겸사 공사비를 아낄 수 있겠다는 이유였다. 거기에 사방으로 열린 땅에 여러 방향으로 동등한 얼굴을 세우는 것은 적절한 액션이라는, 그리고 구심력을 갖고 똘똘 뭉친 조형이라면 갓 태어난 마을에서 소박하지만 묵직한 선언이 될 수도 있겠다는 해석을 덧붙였다.

 

 

접힌 지붕의 특색을 보여주다.

 

(2층 가족실 전경)

 

지붕은 ‘지구단위계획지침 (경사지붕)과 ‘수평의 실루엣 (평면과 앉음새에 어울리는 조형)’을 동시에 충족하려는 고민의 결과이다. 서둘러 만든 스터디 모형에서 ‘묵직한 본체 위에 살짝 접힌 지붕이 가볍게 올라타는'이미지가 도출되었다.

 

이를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 콘크리트 본체 위에 각형 강관 구조체가 세워지는, 주택에서는 보기 드문 구조방식을 택하였다. 덕분에 지붕과 벽 사이에 예리하게 찢어진 틈이 생겼고, 그 틈은 고창 (高窓,Clerestory)이 되었다. 지붕의 아랫면, 2층의 천장은 조명기기나 센서 같은 별도의 요소가 전혀 붙지 않은, 순수한 백색의 면으로 처리되었다.

 

 

1층 ㅣ주방

 

상부 유리바닥을 통해서 2층 가족실의 공간 분위기가 1층 식당까지 이어진다. 정사각형 윤곽의 통통한 공간이지만, 갑갑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1층 주방에서 전면 데크와 놀이방을 바라본 장면. 1층의 모든 상황과 2층의 인기척까지 감지할 수 있다.

 

낮은 계단은 수납 공간을 품은 목계단으로, 높은 계단은 캔틸레버 철판으로 날렵하게 연출했다.

 

세면실로 겸하는 욕실로 통하는 1층 복도. 둥근 거울과 조명 연출은 건축주의 센스이다.

 

 

2층 ㅣ 가족실

 

가족들의 시간을 함께 나누는 가족실의 전경이다.

 

 

2층 ㅣ 드레스룸

 

2층의 드레스룸, 욕실, 부부 침실을 잇는 복도 겸 파우더룸

 

 

2층 ㅣ 욕실

 

2층 욕실은 고창 덕분에 늘 밝은 분위기를 낸다.

 

 

CONCEPT DESIGN : 빛이 만들어내는 변주

지구단위계획지침에 따르자면 ‘통일감 형성을 위해 지붕은 경사지붕'이어야 한다. 지붕을 여러 번 접고 정점(용마루)의 높이를 가지런히 맞추어, (실제 조형은 수평이 아니지만) 가상의 수평선을 암시한다.

지구단위계획지침의 취지를 지키는 동시에 정사각형 평면에 어울리는 조형을 연출하는 것이다. 지붕과 벽 사이에 예리하게 찢어진 고창으로 여름의 가파른 햇살은 구석에 조금, 겨울에 비스듬한 햇살은 깊숙이 들어온다.

 

계단 중간, 1층과 2층의 경계. 2층의 고창으로 들어온 빛은 관통하고, 부서지고ㅡ 때로는 반사되며 공간을 구석구석 물들인다.

 

 

평면도로 미리보기

 
(1F_평면도)
(2F_평면도)

 

2층 가족실의 유리바닥은 시원하게 열린 느낌과 공간의 효율을 동시에 원하는 건축주 아내의 바람에서 나온 것이다. 통통한 평면의 갑갑함을 해소하면서 빛의 인기척을 이어주고 있다.

 

접힌 지붕과 고창, 그리고 유리바닥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나비지붕집 고유의 공간을 연출한다. 얼핏 폐쇄적인 것처럼 보이는 인상에도 불구하고 집안 분위기는 바깥 날씨의 변화와 시간의 흐름에 섬세하게 반응하여 극적으로 변화한다. 내부 깊숙이 들어온 햇살은 공간을 관통하고 부딪치고 부서지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효과를 빚어낸다.

 

유리바닥을 통해 2층에서 1층으로 쏟아졌던 햇살의 흐름은, 밤이 되면 1층에서 2층으로 솟구치는 인공 빛의 흐름으로 역전된다.

 

공간과 공간과의 관계, 그리고 개별 공간의 점유 방식 또한 뒤바뀌게 된다. 낮에 햇살을 받아들이는 입구였던 고창은, 밤에는 내부의 빛을 바깥으로 발산하는 출구가 된다.

 

해질녘 2층 가족실 풍경. 시간의 변화에 따라 빛의 방향 뿐 아니라 공간의 색깔도 바뀐다.

 

 

꿈에 영감을 주는 집

 

새로운 삶에 대한 상상은 벽, 기둥, 바닥, 계단, 지붕, 그리고 빛 같은, 기본적인 건축 요소 하나하나의 의미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집을 꿈꿀 때, 공간 그 자체의 분위기 또한 적극적으로 추구할 만한 가치가 될 거라고 믿는다.

 

숫자로 나타나는 면적이나 공간의 효율성, 생활의 편리함과는 조금 다른 차원의 가치. 막연히 세련되거나 재미있어 보이는 스타일과는 다른, 건축구성 원리의 핵심에 도전하는 디자인의 힘을 믿는다. 안정된 일상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삶을 꿈꾸며, 개인적인 취향을 적극 추구하는 건축주 부부의 개성 넘치는 삶.

그 삶을 담아내는 무난한 배경을 넘어, 그 꿈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영감을 주는 집이 되기를 바란다.

‘불편한 드라마를 기대한다'는 건축추가 보낸 첫 메일의 있던 문구처럼

 

 

사진 : 최지현, 천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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