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9.24 11:55

덜어내고 덜어내서 만들어진, 경주 노워즈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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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천마총 옆에는 ‘황리단길’이라고 불리는 골목이 있다. 차도를 끼고 한쪽에는 고분, 반대편에는 가게들이 줄지어 있는 곳이다. 이 길목에는 ‘노워즈(No words)’라는 이름의 카페가 하나 있다. ‘말이 필요하지 않은’이라는 이름처럼 이곳은 수식어가 필요하지 않은 곳. 인테리어, 메뉴, 서비스까지 모든 것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떨어진다.

 

카페를 차리기 전, 저는 잡지사에서 일했어요. 함께 일하는 동생은 안산에서 카페를 운영했고요. 둘 다 유유자적한 삶을 좋아해서 “지방에서 커피숍을 운영하며 재미있게 살고 싶다.”고 얘기하곤 했었죠.

 

경주는 종종 놀러 오던 곳인데 공원과 관광지가 많아 심심하지 않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미래의 커피숍’ 후보지 중 하나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작년에 놀러 왔다가 우연히 지금의 카페 자리를 발견했어요.

 

에어비앤비 주인이 현재 가게가 있는 골목 초입에 있는 ‘노르딕’이라는 브런치 카페를 추천해줬거든요. 지금은 이 길이 ‘황리단길’이라 불리며 ‘핫’하지만, 그때는 대부분 문을 닫은 상가나 점집이라 길 전체가 조용했죠. 길을 따라 쭉 걸었는데 자연스럽게 낡은 건물들이 멋스러웠어요.

 

문을 닫은 오래된 가게들 사이에 갑자기 불 켜진 커피숍 하나가 툭, 있으면 재미있을 것 같더라고요. 그런 생각을 하던 차에 한 가게 앞에 ‘세를 놓는다’는 쪽지를 발견했죠. 바로 집주인에게 연락해 내부를 확인했고, 일주일 후에 계약했어요.

 

다른 지방 도시들은 어떨지 잘 모르겠지만, 노워즈 주변 가게들은 공인중개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세를 놓더라고요. 최근까지도 가게 앞에 ‘세 놓음’이라고 적힌 쪽지를 붙여둔 것을 봤어요. 주변인을 통해 알음알음 거래가 진행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꼭 경주가 아니더라도 지방에 가게 자리를 알아보고 있다면, 모든 인맥을 총동원해 해당 동네 주민에게 정보를 얻는 게 우선인 것 같아요. 실제로 작년에 놀러 왔을 때, 근처 부동산에 이 길의 시세를 물어봤는데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거든요.

 

지금의 노워즈는 문 닫은 지 오래된 술집이었어요. 이 길에 있는 대부분 건물이 주거 겸 상가 형태라 집처럼 전면부는 주방, 안쪽은 세 개의 방으로 나뉘어 있었죠. 워낙 오래 비어 있던 탓에 천장도 살짝 무너지고 벽지도 많이 손상된 상태였어요.

 

이 길에 있는 건물 대부분이 일본강점기 혹은 1950년대에 지어져 천장이 서까래 형태인 경우가 많아요. 저희 가게도 그랬죠.

 

기존에 있던 합판 천장을 모두 뜯어내 서까래를 그대로 노출했어요.

 

시간과 노력을 가장 기울인 부분은 보수공사였어요. 오래된 집이다 보니 천장이 약했고 이미 한 번 보수했던 흔적도 있었어요. 지지대 역할을 할 철근 빔을 설치하는 것이 불가피했죠.

 

천장에는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하나 더 있었는데, 바로 흙 조각과 지푸라기가 떨어진다는 것! 중간중간 튀어나와 있던 지푸라기와 나뭇조각을 일일 손으로 정리했어요.

 

천장 전체에 투명한 코팅제를 수차례 뿌려 막을 씌웠죠. 물론, 요즘에도 종종 천장에서 지푸라기가 떨어집니다. 서까래 천장을 노출한 이 일대의 가게에선 자주 있는 일이라 이젠 그러려니 해요.

 

벽면은 기존에 붙어 있던 벽지를 떼고 투명 에폭시로 코팅만 해서 마무리했어요. 벽면에 얼룩진 부분은 채 뜯기지 않은 벽지 자국이죠.

 

벽에 붙어있던 벽지를 뜯고 다같이 “올레!”를 외쳤어요. 곰팡이 슨 벽지 뒤에 이렇게 예쁜 날 것의 벽이 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요.

 

구멍, 금이 간 부분, 시멘트를 덧칠한 자국 등 벽에 있는 모든 것은 원래 있던 거예요. 천장이나 바닥 보수에 시간과 돈이 많이 들었던 게 오래된 건물을 고른 단점이었다면, 크게 손대지 않고도 낡은 무드를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뜻밖의 수확이었죠.

 

업체를 선정하기 이전에 이미 내부 인테리어와 톤앤매너가 완벽하게 정해진 상태였거든요. 제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와 비슷한 사진들을 찾아 시안을 만들고, 이를 조금 더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는 디자이너를 섭외했죠.

 

‘덜어낼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덜어내자’고 생각하며 작업했어요. 뺄 수 있는 것들을 빼고 또 빼다 보면 없어서는 안 될 몇 가지만 남게 되고, 그럼 자연스레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보여주고 싶은 것을 드러낼 수 있게 되니까요. 공사하는 내내 ‘무엇을 더 뺄 수 있을까.’를 계속 생각했어요.

 

건물 외관은 원래 있던 간판을 떼어낸 것 외에는 전혀 손대지 않았어요. 입구에 있던 작은 간판을 떼어 내니 현재의 아치가 나왔거든요. 이전 주인이 간판으로 아치 모양을 가렸던 것을 보면 그 이전 혹은 더 이전의 주인이 만든 것 같아요.

 

입구에서 사진을 찍는 손님들이 많은데, 이곳이 포토 스폿이 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안에서 봤을 때는 내부의 톤과 잘 어울리지만, 사실 밖에서 봤을 때 아치의 형태가 어두운 벽돌이 노란 외벽과는 조금 이질감이 있어요. 페인트를 칠할까 생각도 했는데, 손을 대도 멋스럽게 낡은 지금의 모습보다 결과가 잘 나올 수 없을 것 같아 그대로 뒀죠.

 

내부 공간이 10평 정도밖에 되지 않고, 그나마도 바(Bar)가 많은 공간을 차지했기 때문에 공간 활용을 잘해야 했어요.

 

동생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창문을 크게 내고 창틀을 의자로 활용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죠. 이를 위해 창문을 여닫이 형태로 크게 만들었어요.

 

보강용으로 세운 철근은 남색, 천장에 달린 팬은 흰색, 환풍 배수관은 회색인 데다가 각각의 텍스처도 다 달랐어요. 어떤 것은 철, 어떤 것은 플라스틱이고. 무엇보다 새롭게 추가된 요소들이 내부의 오래된 것들을 해치는 것 같아 거슬렸죠.

 

최대한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방법으로 찾은 게 지금의 컬러와 텍스처로 도색하는 것이었어요. 머신과 커피용 집기 외에 새롭게 들여놓은 모든 자재는 녹슨 철근 같은 느낌을 주는 페인트로 일일이 칠했어요.

 

별도로 구매한 벽면에 있는 높은 의자와 커피 머신이 놓여진 중앙 테이블을 제외하고, 모든 나무는 같은 것을 사용했어요.

 

폐교에서 마룻바닥으로 사용했던 나무를 가공해 재활용한 것이죠. 낡은 내부의 느낌과 잘 어울린 것 같다며 인테리어를 담당했던 디자이너가 추천해줬어요.

 

각각의 나무가 다른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니스 칠을 하고 안 하고의 차이예요. 중앙에 놓은 의자와 핸드드립을 하는 좌측 바 부분은 니스를 칠하지 않고 광택이 없는 질감을 살렸어요. 전체를 다 칠하면 반짝임이 과할 것 같아서요.

 

거울이 달린 벽은 화장실을 만들면서 새로 새웠어요. 그렇다 보니 오래된 다른 벽이나 천장과 좀처럼 어우러지지 않더라고요. 회반죽을 덧발라 일부러 거친 텍스처를 만들어보기도 했는데, 효과가 없더라고요. 무엇을 해도 어색하길래 차라리 가리는 쪽을 선택했어요.

 

이왕이면 좁은 내부를 보완할 수 있도록 거울을 선택했죠. 천장에 무거운 것을 달 수 없어 일반 거울이 아닌 거울처럼 반사되는 아크릴을 제작해 걸었어요. 가까이에서 자세히 보면 울퉁불퉁하게 반사되는데 그게 또 하나의 재미요소가 된 것 같아요.

 

창가에 있는 의자는 바깥쪽에서 창틀에 앉았을 때, 알맞은 높이로 제작되었어요. 가게가 도로 쪽보다 두 계단 정도 높아 안쪽에서 앉으면 높이가 낮을 수밖에 없거든요.

 

테이블은 원래 있었는데 최근에 없앴어요. 좁은 내부를 더 혼잡하게 하는 것 같아 과감하게 없앴어요.

 

손님들의 공간보다 커피를 내리는 공간은 조금 더 위로 솟아있어요. 의자에 앉아서 바라봤을 때, 바리스타가 커피를 내리는 모습이 무대 위에서 공연하는 것처럼 보였으면 했거든요. 머신이 놓인 곳이 한 단 높고, 비교적 넓은 공간을 차지하게 했어요.

 

머신이 놓인 가구는 기성품인 나무 테이블을 디자이너가 리폼했어요. 서서 사용하기에는 테이블이 낮아 나무로 제작한 상판을 쌓아 올렸고, 다리에는 천장 빔 철근에 사용한 것과 같은 페인트를 칠해 단단하고 묵직해 보이는 효과를 더했죠.

 

책상다리를 자세히 보면 앵커 볼트가 여러 개 박혀 있는데, 이 역시 장식용이에요.

 

아래에 노출된 것은 머신에 달린 급수 펌프예요. 머신을 올려둔 테이블이 노출형이다 보니 펌프도 자연스레 노출되었네요.

 

한쪽의 리스는 옆 가게 사장님이 작년 크리스마스에 선물로 주신 거예요. 마른 나뭇가지로 직접 만든 거라 시간이 지나면서 매듭이 서서히 풀어져 형태가 조금씩 변하거든요. 매듭이 다 풀려 스스로 떨어지면 치우자고 했던 게 지금까지 왔네요.

 

노워즈는 메뉴가 많지 않아요.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되는데, WHITE는 우유가 들어가는 음료(라테, 카푸치노, 플랫화이트)고 BLACK(에스프레소, 롱블래)은 우유가 없는 음료, FILTER는 드립이에요. 손님들에게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는 것만 메뉴로 구성했죠.

 

FILTER는 안산에 있는 로스터와 계속 상의하며 그때그때 좋은 싱글 원두를 찾아 판매하고 있으니, 믿고 드셔보셔도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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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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