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힘들 때, 이런 말을 하곤 한다. “아, 제주에 가서 여유롭게 살고 싶다.” 진심일 수도 있고, 힘들어서 뱉어본 얘기일 수도 있다. 만약 진심이라면, 정말 제주에 내려가 살고 싶다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서울에서 일하다 제주로 내려가 사는 김여진 씨는 제주공항 근처에서 ‘소녀민박’을 운영한다. 소녀민박을 찾아가 며칠 묵으며 제주살이에 궁금한 것들을 물어봤다.
제주에 내려오기 전엔 어떤 일을 했나요?
결혼식이나 돌잔치 같은 행사를 진행했어요. 생애 처음으로 돈을 모을 수 있게 해준 일이었지만, 즐거운 일은 아니었죠. 어릴 적부터 매력적인 숙소를 운영해보고 싶었던 꿈이 있었기에 이벤트 일을 하면서도 팬션 매물 사이트를 틈만 나면 뒤졌어요. 가평이나 양평 일대의 전원주택 임대물을 보러 다니는 일이 취미이자 삶의 낙이었죠.
그러던 중에 제주 붐과 게스트하우스 붐(지금으로부터 5년 전)이 일기 시작했어요. 마침 그즈음이 ‘떠나볼까?’ 하던 시기여서 제주로 내려오게 되었어요.
제주에 내려오기로 한 후엔 무엇을 가장 먼저 했나요?
사전 답사를 겸해서 3박 4일로 여행을 왔었어요. 그때만 해도 제주 집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었거든요. 부동산도 중요하지만, 발품을 팔아야 한다는 얘기가 많길래 제주를 한 바퀴 돌아봤어요. 여기서 발품을 팔아야 한다는 것은 부동산을 많이 도는 발품이 아니라, 마을 구석구석을 돌며 주민들에게 내놓은 집이 있는지 묻거나 빈집이 있다면 그 집의 주인을 찾는 걸 의미해요. 다소 허무맹랑한 얘기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 많이 쓰던 방법이에요.
그런 방식으로 첫 번째 집을 구했나요?
아뇨. 저는 운이 별로 없었는지 계속 돌기만 하고 무소득이었어요. 발품 팔기는 포기하고 두 번째 답사에서 부동산에서 소개해준 집을 얻었어요. 다락방이 있는 예쁜 집이었죠. 대학가에 있어 별다른 제주다운 느낌이 없었는데도 모든 게 ‘야자수’ 스럽고 ‘감귤’ 스러웠어요. ‘내가 제주에 왔구나.’ 하며 감탄했었죠. 그 집에 살면서 민박집을 쓸 수 있는 집을 찾아 다녔고, 5개월 만에 바다가 창으로 길게 보이는 집을 얻을 수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의 소녀민박에서는 바다가 보이지 않네요.
그 집이 소녀민박이 되지 못했거든요. 연세 1,000도 넘을 수 있을 집을 650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얻었어요. ‘이런 행운이 내게도 오다니!’ 하고 신나게 이사하고 집도 치장하고 이런저런 그림을 그렸어요. 그런데 한 달 만에 주인 할머니가 집을 빼라는 거예요.
그게 가능한가요?
할머니가 계약서 쓰는 걸 원치 않아 하셔서 구두 계약에 돈도 직접 드렸거든요. 멋진 집에 눈이 멀었었고 인심 좋은 할머니라 계약서 한 장쯤 없어도 될 줄 알았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아들이 제주로 올 수도 있어서 계약서를 안 쓰신 것이더라고요. 저의 부주의가 우선이었던 사건이라 할머니를 탓하고 싶진 않아요.
그 집에서 급히 나와 얻은 곳이 지금의 소녀민박이에요. 처음엔 임시로 얻고 다른 곳을 구하려고 했는데, 1년, 2년, 3년이 지나 벌써 4년째로 접어들었네요. 그 사이에 정이 많이 들어버렸어요.
소녀민박을 구했던 당시와
지금 제주의 집값은 어떤가요?
그때만 해도 5천만 원 안팎의 집이 매매로 종종 나왔었어요. 그땐 제주의 모든 집은 내가 마음만 먹으면 살 수 있는 건 줄 알았죠(웃음). 그런데도 사고 싶은 집에 대한 확신이 없어 계속 미루다가 제 소유의 집을 얻진 못했어요.
지금은 그런 때가 있었다는 게 거짓말처럼 집값이 많이 올랐어요. 가끔 제주에 놀러 오는 사람들과 투어를 하며 “저 집은 얼마였고, 저 집은 얼마였어.”라고 말하는 정도예요. 정착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다가 집 살 시기를 놓친 분들이 저 말고도 꽤 있어요.
그렇다면 제주에서 지내며 바라는 집이 따로 있나요?
바라는 집은 없어요. 짧다면 짧은 기간 동안 원 없이 집들을 만나본 것 같기도 하고요. 현재 주어진 집들을 좀 더 의미 있게 사용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그 생각은 늘 하지만 열심히 그쪽으로 가진 않아요. 제 흐름에 맞는 모양과 시간을 꿈꾸면서 지내는 편이에요. 반대로 그렇게 지내다 보면 오히려 바라본 적 없는 집이 제게 올 수도 있다는 다소 맹랑한 생각은 있어요.
여전히 잘 찾으면
싼 집이 많다는 얘기도 들은 적이 있거든요.
아무리 집값이 올랐다고 해도 여전히 살만한 가격의 집들은 있겠죠. 붐이 일기 전에는 정말 싸긴 했어요. 그때도 싼 집은 오래되고 낡은 집이었고, 살다 보면 수리비가 계속해서 들어가는 집들이었어요. 집을 수리할 기술을 가진 분들에겐 좋은 집일 수 있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겐 골칫덩이잖아요. 큰 기술 없이도 바로 살 수 있는 집들은 이젠 싼 범주에선 벗어난 것 같더라고요.
손보지 않은 상태로 싸게 주던 때와 달리 요즘은 손을 봐서 가격을 올리는 추세인 것 같아요. 여전히 오래된 집은 많아서 한 마을에 임시로 살면서 동네의 쓸만한 집을 찾아보는 것도 방법이에요.
집을 구할 때, 어려웠던 점은 뭔가요?
서울에서는 대부분 일터에 맞춰 지역을 정하잖아요. 제주로 오게 될 때는 대부분 하던 일을 그만두고 오다 보니, 뜻밖에 살고 싶은 지역을 고르는 게 어려워요. 지역을 고르는 것 자체에 시간이 소요되고 원하는 곳이 생겨도 내 상황에 맞는 집 선택의 폭이 넓지 않죠. 이건 뭐, 다른 도시나 제주나 매한가지겠죠. 집이 없는 것도 문제였는데, 요즘은 부쩍 건물이 많아지는 추세라 집이 없어서 못 구할 걱정은 줄어든 것 같아요.
정말 제주에 내려가려는 시도를 해보려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정보를 더 주실 수 있을까요?
어느 정도 와서 살아보고 정하려는 분들이 많잖아요. 그럴 땐 우선 연세로 집을 구해서 일정 기간을 살고 남은 기간은 이어서 살 사람을 구해 나오면 좋아요. 제주오일장신문이나 교차로신문, 다음 카페인 ‘제주맘’ 등에 ‘주택’란이 있어요. 그런 곳에서 집을 찾거나 내놓을 수 있죠.
집을 구하고 막상 살게 되면 밖에서 보는 정보와 마을 안에서 필요한 정보가 따로 있어요. 살면서 필요한 양의 정보는 적고, 그 마을의 크기보다 더 많은 양을 취할 이유가 점점 줄어요. 오히려 타지에서 이주하려는 분들이 정보를 얻으러 왔다가 재미있는 정보를 주고 가시더라고요.
제주에는 텃세도 많다고 들었어요.
지역마다 많이 다른 것 같더라고요. 어느 지역에 가면 희미한 곳이 있고, 또 어떤 곳에선 아닌 것 같아도 아주 팽배한 곳도 있고요. 도시 사람들이 제주로 이민 오기 시작한 것이 길어야 7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잖아요. 평생을 섬에서 태어나고 사신 분들에겐 육지 사람들이 마음대로 이 섬을 바꾸는 일이 불편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지내면서 보니 이해가 되는 부분이 많아요.
내려와서 사는 분들도
새로 내려오는 분들에게 부리는 텃세가 있다고요.
아무래도 그건 여유가 없어서 그럴 거예요. 정착을 위해서 어렵게 아등바등하는 상황이라서요. 뭔가 궁금해서 질문했는데, 답을 줄 사람에서 여유가 없는 순간일 수 있는 거죠. 사실 올챙이적을 생각 못하고 이미 와서 잘 지내고 있으면 고민하는 사람의 답답한 얘기가 재미있을 리가 없거든요.
제게도 그런 경험이 몇 번 있어요. 민박집을 제외하면 저도 적당한 집을 못 구하고 있는데, 집에 관해 묻거나 하시면 답을 드리기가 어려웠죠.
보통 ‘민박’이라고 하면 주인이 별채에 묵으면서 챙겨주고 같이 지내잖아요. 소녀민박은 어떻게 운영되나요?
처음엔 제가 소녀민박에 살았어요. 적당히 짐을 풀고 한두 달 정도 살면서 민박집을 준비했죠. 석 달째 되었을 때 첫 손님께서 오셨는데, 같이 지내면 서로 불편할 것 같더라고요. 손님이 있는 날엔 저는 동네 할머니의 집에 가 있었어요. 손님이 없을 땐, 거기에 살았고요.
지금은 다른 집을 구해서 살고 있어요. 처음 저희 집에 손님이 왔을 때, 정말 행복했거든요. ‘내 민박집에 손님이 오다니!’ 지금도 여전히 손님이 오는 날에는 그런 기분이 들어요. 밤에 씻고 지금 집에 누워서 소녀민박에서 시간을 보낼 사람들을 떠올리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에요.
민박집을 운영하다 보면 생기는 고충이 있을 것 같아요.
운영을 어떤 형태 어떤 규모로 하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저의 경우엔 노후 된 집에서 오는 고충이 커요. 보일러, 수도, 전기 같은 시설이 고장 나면 난감하죠. 수리 기사님이 손님 도착하시기 전 와주시지 못하는 경우도 많거든요. 세상이 온통 까매지고 손님께 사실을 알려 드려야 할 땐 대역 죄인이 따로 없죠.
생각하다 보니 자잘한 고충들이 또 많이 떠오르긴 하네요. 시시콜콜 운영 고충을 말하기가 걱정되는 것도 고충의 하나라 할 수 있겠어요. 재미있게 대답해야 ‘재미있는 집이겠다.’ 하고 오지 고충 때문에 민박집 언니가 맨날 징징거리면 안 오고 싶겠죠?
(웃음) 그럼 어떤 게 재미있나요?
요즘에는 청소하는 시간 외에는 소녀민박에 올 일이 거의 없었거든요. 이 인터뷰를 위해서 오랜만에 하루 묵어봤어요. ‘집’에 대해 생각하려고 묵은 건데 그 고민은 안 하고 계속 놀게 되더라고요.
재미있고 좋았어요. 저는 늘 이 집에서 그냥 놀았고, 그게 재미있었거든요. 이 집에 오는 분들도 재미있게 잘 놀다가 가셨으면 해요.
민박집의 인테리어에 대한 얘기를 좀 해보고 싶어요.
오래된 물건들이 많고 아름다워요.
이건 다 어떻게 모으신 건가요?
가구나 덩치 있는 것들은 중고상에서 샀고요. 작은 소품은 모아서 갖고 있던 것들이 많아요. 빈집 구경을 다니면서 세월이 묻어나는 장판과 그릇 같은 것을 얻거나 줍기도 했고요.
주운 물건 중에선 당연히 작동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가 멀쩡해서 기뻤던 경우도 있었어요. 그럴 땐 큰 선물을 받은 것 같아 행복했죠. 철거 현장을 기웃거리며 샹들리에 같은 걸 얻기도 했어요.
민박집이니까 손님들이 망가뜨리거나 갖고 갈 수도 있잖아요. 제가 여진 씨라면 진짜 아끼는 건 여기에 못 둘 것 같은데, 어떠세요?
여기에서 아끼는 게 뭐가 있나 생각해보게 되네요. 만약 망가지면 망가진 채로 두거나 다시 고쳐서 두면 될 것 같아요. 아예 없어진다면 조금 아쉬울 것 같고요. 놓기 살짝 망설여진 물건도 몇 있는데, 놓고 난 후론 잊어버렸던 것 같아요. 제 것이 아닌 물건이 되더라고요.
유독 조명과 거울이 많아요.
조명은 좋아해서 예전부터 많이 모았어요. 거울은 자연스레 많이 생긴 것이기도 한데, 작은 공간을 넓어 보이게 해줘서 좋아요. 앞뒤로 걸린 거울은 연속해서 비치는 모습을 들여다보는 재미도 있고요.
반면에 시계는 안 보이더라고요.
있긴 한데 멈춰있어요. 잘 때 예민한 편이라 시계 초침 소리에 민감하거든요. 민박집에서 살면서 멈추게 해 둔 것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그럴 거예요. 큰 시계는 종이 울리는 시계인데, 한 시엔 한 번 울리지만 열두 시엔 열두 번 울리잖아요. 일찍 잠든 손님들에게 방해가 되는 것 같아 멈추게 해두었어요.
민박집 안의 물건은 작정하고 의도해서 둔 것은 별로 없어요. 그때그때 가지게 된 물건을 맞는 자리에 놓아둔 것뿐이에요. 오히려 손님들이 의미를 부여해주셔서 저도 다시 한번 보게 되는 경우도 있어요. 재미있죠.
마지막으로 여진 씨에게 ‘집’이란 어떤 것인가요?
지금의 제집은 두 곳이잖아요. 하나는 소녀민박이고 다른 하나는 사는 집이요. 소녀민박은 ‘손님들이 재미있어 해주는 곳’인 것 같아요. 그리고 다른 하나는 ‘집착’이에요. 집착이 낳은 물건들을 수납하는 용도죠.
편히 쉬는 집으로 정리했다가도 이내 창고로 변해버리는 일의 반복이에요. 집에서 안락하게 쉬는 일은 중요하지만, 잠은 침구만 있으면 잘 수 있고 커피 마실 뜨거운 물이 있으면 충분하거든요. 하지만 물건들을 둘 공간이 없다고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해져요. ‘쉼’을 위한 집 보다는 수납의 의미가 제겐 더 큰 것 같아요.